욕심으로 출발 망설이는 항공사, 고객 서비스 뒷전
"기장 여권 잃어버려 비행기 지연" 승객 황당하게 하는 항공사들 상반기 국내선 저가항공사 평균 지연률 21.7% , FSC도 증가추세
얼마 전 추석 연휴, 휴가를 망쳐버린 사람들의 사연이 전파를 타고 전해졌다. 이유는 다름아닌 항공기 지연 출발 탓이다.
지난 9월 15일, 에어부산 항공기가 일본 나고야 현지에서 지연 출발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 항공기에 탑승한 승객 130 여명은 약 6시간이나 발이 묶였다. 이유는 항공사가 애초 현지에서 기체 점검을 해야 할 전담 정비사를 태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항공기는 기체 점검을 해야 출발할 수 있는데 처음부터 나고야로 데려 가지 않았다. 어처구니 없는 실수 탓에 100여 명 이상의 일정이 엉망이 됐다. 에어부산 측은 공정위의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따라 운임의 20%를 환불해 준다고 밝혔다.
이틀 전인 9월 13일에는 베트남 호치민 공항에 있던 티웨이 항공이 지연 출발해 탑승객 159명이 공항에서 금싸라기같은 명절 연휴를 날려버렸다. 무려 11시간이다. 지연 출발 이유 역시 납득할 수준이 아니다. 기장이 여권을 잃어버린 탓이란다. 승객들은 대체 기장이 오기를 타국의 공항에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이들도 잘해야 운임 할인 정도를 받게 된다. 공정위 기준에 따르면 국제선의 경우 4~12시간 이내 운송 지연시 20% 배상해주고 12시간을 초과하면 30% 배상을 하라고 한다.
같은 날 아시아나항공도 태국 방콕 공항에서 제 때 출발하지 못했다. 기체 결함 문제였는데 현지에서 부품 조달이 어렵자 항공사 측이 대체기를 투입해 가져오느라 당초 예정시간보다 무려 22시간이나 늦게 출발했다. 이 항공기에는 추석연휴를 맞아 여행을 떠난 승객이 많이 타고 있었는데, 여행의 추억이 답답한 공항 안에서 꼬박 날아간 셈이다.
항공사 지연 출발이 문제다. 단순히 문제점이 아니라 고질병에 가깝다. 최근 몇년 새 항공 산업은 비약적으로 양적 성장을 이뤘지만, 불행히도 그 문화는 퇴보해버린 느낌이다. 그래서 공급자도 수요자도 지연 출발을 어쩌면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있는 지도 모른다.
항공기가 예정시간보다 늦게 출발하는 지연이 일상화된 이유는 간단하다. 항공사가 항공기를 좀더 많이 '돌려' 수익을 내기 위함이다. 근거리나 장거리 국제선을 출항하고 돌아오면 안전 점검을 마친 후 바로 국내선에 투입하는 식(아니면 반대)인데, 이중 하나라도 지연 출발 사유가 생기면 다음 연결 편 역시 도미노처럼 지연이 연쇄적으로 이어진다.
전세계에서 가장 핫한 노선이라는 김포~제주 구간을 포함해 국내선의 경우, 약 9%가 제때 출발하지 못했는데 사유는 대부분 항공 연결 편 문제였다. 10대 중 1대 꼴이다. 요즈음 같은 시기에 시내버스 마을버스만 못하다. 이정도 불확실성은 철도 등 다른 교통수단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항공기 연결편 문제'란 공항에서 늘 듣던 지연 안내 멘트 덕에 귀에 익을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국제선의 경우 절반(55.6%), 국내선은 90%(87.9%) 가까이 출발 지연 사유로 항공기 연결 문제를 꼽았다. 기상 악화 등 자연조건은 국내선 3.5%, 국제선 2.2%에 불과했다.
다시 말해 비행기가 뜨지 못하는 이유는 태풍보다 항공사의 욕심 탓이란 얘기다.
저비용항공사(LCC)가 시장을 확장해 가면서 이 같은 현상은 더욱 두드러졌다. 올해(1~8월) LCC 평균 지연율(국내선)은 무려 21.7%로 나타났다. 10대 당 2대가 넘는다. LCC의 경우, 항공기 보유 대수가 적은데다 정비 운항 등 인력마저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 등 풀서비스 항공사(FSC)도 최근 자금난에 허덕이며 무리한 스케줄을 돌리다가 지연 출발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아시아나항공의 기체결함 지연 사례처럼, 항공기 정비 때문에 지연되는 경우는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 정비 관련 문제는 항공기 연결편 문제보다는 적게 발생하지만, 지연되는 시간 자체가 길어 승객 불편이 더하다. 현지에 정비 부품이나 인력이 없으면 대체 편을 통해 실어와야 비로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탓이다.
소비자가 지연 출발에 대해 보상받기 어렵다는 점도 암울한 현실이다. 별다른 항의 수단도 없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분쟁해결기준도 현실에 맞지 않는 수준이다. 1시간 이내 지연은 아예 보상 규정에도 없다. 출발 지연을 각오(?)하고 스케줄을 무리하게 잡는 게 이득이란 뜻이다.
'항공 연결편'을 내세우면 모든 책임에서 해방되는 것이 아닐진대 앵무새처럼 안내 멘트만 반복할 뿐이다.
"제주에서 서울로 가는 ○○항공 ×××편을 탑승하시는 승객 여러분께 죄송한 출발 지연 안내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 항공편은 '항공편 연결관계'로 출발 예정시간보다 30분 늦어진 △△시□□분에 출발할 예정입니다"
항공사 명만 바뀌었지 끊임없이 앵무새처럼 반복되는 안내 멘트, 과연 정말 미안하기나 한걸까.
항공사들은 항공기 문을 닫고 탑승교를 떼어내면 출발로 간주한다. 5분 10분이 늦어지면 공항의 이륙 스케줄에서도 밀린다. 활주로 옆에서 하염없이 대기하면서도 출발했다 주장하기도 한다. 도착 이후 빠듯한 일정을 잡은 승객들은 벙어리 냉가슴으로 항공기 안에 앉아만 있어야 한다.
사업 상 개인 간 미팅이나 회의 참석, 의료기관 방문 등 도착 후 이어지는 일들이 지연 출발 하나로 줄줄이 취소되는 경우도 있다.
승객이 지연 출.도착에 대비해 스스로 반나절 이상을 비워놓았어야 마땅한 것일까. 갈수록 분초 단위로 치밀해지고 있는 현대 사회에 역행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항공은 운송업이다. 제 시간을 맞춰 출발하고 도착하는 것이 그 어떤 가치보다 우선이다. 가장 완벽한 항공 서비스란 친절한 승무원도 맛있는 기내식도 아니다. 정시 출발하고 도착하는 정확성이 최고의 서비스란 것을 항공 관계자들이 먼저 깨달아야 한다.
글·사진 이우석 스포츠서울 전문기자